<서브스턴스>의 색깔들
영화 <서브스턴스(Substance, 2024)>
직관적인 색깔로 시간과 주인공의 행보를 상징한다
1. 그 '물질'은 연두색
문제의 그 물질이다
서양권에서는 이런 인위적인 형광 연두색을 사악하고 위험한 것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1700년대 빅토리아 시대에 연두색 비소를 사용해서 오묘한 연두색을 만들어냈는데
그당시에는 비소가 독극물인지 모르고 색깔 이쁘다고 오만데 다 써대다가
사람들 죽어나가서 나중에야 그게 독인지 알게 된거다
그 이후로 비소 연두색 = 독극물 = 악당, 나쁜 것들의 상징이 되었다고..
자연에서 찾을 수 있는 나뭇잎 연두색이 아니라
형광 연두색은 굉장히 인위적인 색깔로 보인다
마치 자연을 흉내냈지만 자연의 편안함은 결코 흉내낼 수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 '물질'은 색깔만 봐도 명백히 독극물이다
시간의 흐름을 역행하려는 욕망,
하나의 정신/하나의 몸을 가진 나를 두 개로 쪼개려는 인위적인 시도는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는 행위다
약물 색깔 봤으면 피했어야지
2. 시간의 신호등
2-1. 빨강, 핑크, 젊음
영화에서 핑크는 젊음을 상징한다
젊은 엘리자베스, 수의 상징컬러는 핑크
엘리자베스가 젊어지자마자 상점에서 바로 사 입은 옷이 핑크다
싱그럽고 사랑스럽고 생동감 넘치고 그자체로 예쁜 컬러로 묘사된다
수의 생기넘치고 하얀 피부, 밝은 갈색톤의 머리와 어우러져
핑크는 더 화사해보인다
수는 잠옷도 핑크여
연두색과 핑크에 대한 이해를 하고 나면
독극물과도 같은 약물(연두)로 젊어지려고 했던(핑크) 한 여자의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포스터로 보인다
그 젊어지려는 시도 자체도 자연과 자신을 역행하는 짓이었으니 형광 핑크로 표현했을지도?
나는 이 핑크가 신호등의 빨강에 해당한다고 본다
핑크 예쁘지 그 자체로 싱그럽지
그런데 조금만 짙게 보면 빨간색
신호등에서 '멈춤'을 의미하는 색이다
젊은 시절은 지나갔고 젊음을 되돌리려는 시도로 가면 안되는데
엘리자베스는 결국 빨간불로 가버렸다
강렬한 레드 드레스를 입고 맘에 드는 동창을 만나러 가려는 엘리자베스
이때 잠깐 원래의 자신으로 살아가보려는 마음을 먹었으나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는 '젊음'을 덮어쓰려다가
자신의 몸뚱이로는 '빨간불'로 직행할 수 없음을 깨닫고
실망한 채 약속에 나가지 않는다
엘리자베스는 이때부터 자신을 극도로 혐오하기 시작한다
어울리지 않는 빨강에 자신을 욱여넣으려다
그게 되지 않으니 자신을 버린거다
빨강/핑크를 버렸어야지
2-2. 원래의 시간, 파랑, 자신
영화에서 파랑은 원래 엘리자베스 원형의 색이다
파랑은 신호등에서 출발, 순행, 가야하는 길과 가던 길로 그대로 흘러가는 신호다
억지로 빨강을 입으려하기 전에 엘리자베스는 파랑색이었다
첫 등장할때 파랑색 피트니스복 너무 이쁘고 잘 어울렸는데
늙어가는 자신의 몸뚱이를 미워하고 있으나,
이 장면에서 파랑 계열인 네이비 컬러가 찰떡같이 어울린다
보는 사람 입장에선
"이미 저렇게나 고급스럽고 아름다운데 왜 자신을 미워할까"
이런 생각이 들만큼 자연스럽게 잘 어울린다
하지만 그녀는 순조롭게 출발하라는 파랑 신호를 따르지 않고
빨강 신호로 역행하는 악수를 두고 만다
영화에서는 엘리자베스와 수를 파랑과 핑크로 대비하면서 보여준다
엘리자베스가 자신을 얼마나 혐오해가는지 보여주는 액자
파란 옷을 입은 자신을 하염없이 깨부수면서
점점 더 자신을 혐오해가며 무너지는 마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엘리자베스는 파란 옷을 입은 (충분히 멋진) 자신은 보지 않고
핑크 옷을 입고 그 자리를 꿰찬 수의 옥외광고를 보면서 참고 견디며 살아간다
2-3. 노랑, 정지, 갈림길
영화 속에서 엘리자베스와 수는 둘다 한 코트만 입는다
그 놈의 노랑색 코트
아니 돈도 많을텐데 이거 하나밖에 안입는다
심지어 엘리자베스가 수가 되었을 때도 이거 입고 나간다
옷장에 옷도 많더만 외투를 입을 땐 왜 이 노란색 옷만 입는걸까
노란색은 신호등에서 잠시, 대기의 신호다
파랑과 빨강 사이, 순행과 멈춤 사이에 있는 중립의 신호이기도 하다
엘리자베스는 노란색 코트를 입고 리필을 받으러 갈때마다
언제든지 substance 서비스를 중단할 수 있었다
빨강의 신호로 들어가지 않고 다시 본래의 자신을 찾으면서 파랑의 신호를 따르기로 선택할 수 있는 상태
그리고 다시 돌아가 약물을 보자
약물은 yellow green
독극물이기만 한줄 알았던 그 물질
사실 이용자는 언제든 선택할 수 있었다
저 노랑 신호 위에서 자신으로 나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