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울면서 화를 냈고
Y는 억울해하면서 당황했다
어쨌거나 그날 싸우면서 길게 통화하면서 다툼을 마무리 지었다.
나중에 다시 싸우자는 건 아니었고 그 다툼에 대해서 서로의 의견을 확인하고 논의를 종결했다.
그러나 감정은 종결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정보가 충분히 공유되면 안정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래서 싸웠더라도 서로의 입장에 대해 잘 얘기하여 상대방을 이해시키고
이미 저질러진 태도에 대해서는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면(받아준다는 전제 하에)
다퉜더라도 금세 평상시와 같은 상태를 회복한다.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의 세계가 충돌하는데
다투지 않을 수는 없으니
'잘' 다투면 된다고 생각한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속담처럼

그렇기에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Y의 본질이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대화가 잘 통하고 앞으로도 잘 통할 것이라 생각했다.
간과한 것이 있었다.
Y는 자신이 회피형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게 정말 어마어마한 (내 기준에서는) 회피형일 거라고는 몰랐던 것이다.
그날 밤의 전쟁에서 Y는 내가 화내는 것 자체에 대해 상처를 받았다(화가 났다고 표현해도 될듯)고 한다
Y는 다툼, 평화롭지 않은 분위기, 위태로움 등 관계에서 부정적인 요소는 모두 피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이전의 작은 다툼에서도
나 : 서로 대화 잘 한 후(잘했다고 생각함) 기분 나쁘지 않음. 내가 잘못해서 혼났을 때에도.
Y : 대화는 끝났어도 기분은 바로 풀리진 않아. 상대방이 내 기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것도 피하고 싶음.
그냥 가만히 냅두면 풀리니 더이상 내 기분이 아직도 안 좋냐 그런 거 확인하지 말아줘
Y는 심지어 본인이 나를 혼냈을 때에도 그런 것 같았다.
Y는 너무나 유리 같아서
나에게 안 좋은 얘기를 들을 때에나 본인이 나에게 안 좋은 얘기를 해야할 때에나
사랑이 몽글몽글한 이야기만 해도 에너지가 부족한데
이런 폭력적인(?)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 자체에 크게 타격을 받는 것 같았다.

Y가 그냥 에겐남인줄 알았는데
에겐+개복치남이었다.
그 날의 전투 이후 Y는 일주일 내내 기분이 안 좋은 티가 났고
나한테 매일 걸던 영상통화도 한 번도 하지 않고
음성 전화도 피하려고 했다.
전투 이후 2~3일 간은 카톡에 ㅋ 하나 쓰지 않았다.

전투 5일 후, 금요일에 Y가 여의도로 외근을 나왔다.
Y가 저녁에 여의도 정인면옥 가자고 제안했다.
Y는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아보였으나 나를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았다.
평냉 그릇에도 살얼음이 없었지만
우리 둘이 마주 보고 앉은 식탁 위에는 살얼음 같은 전운이 감도는 것 같았다.
식사 후 차에 탔다. Y는 "이제 어디갈까" 라고 했지만
그게 정말 나와 데이트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기분이 좋지 않은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나를 배려하는 것이라는 게 빤히 보였다.
Y의 감정이 너무도 투명하게 보여서
'과연 이건 티를 내지 않으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는가' 본질적인 의문이 들 정도였다.
안정형도 회피형을 만나면 상대적 불안형이 된다.
언젠가 들어보았던 말이 떠올랐다.
불안형처럼 재촉하고 싶지 않았으나 5일이면 충분히 기다려 준 수준이라고 판단했다.
내가,, 화낸 게 그에게 잘못일 수 있으나
다시 그 날로 돌아가더라도 문제를 제기할만큼 나는 화가 많이 났었다. 그걸 부정하고 싶지 않다.
즉, 내가 일방적으로 잘못한 것도 아니니, 이제는 묻고 싶었다.
니 말대로 기분 어떤지 안 묻고 기다렸는데 얼마나 기다려야 하냐고.
내가 더 이상 뭘 할 수 있냐고
대화를 위해 여의도 한강 공원으로 갔다.
차를 대고 대화할 장소를 찾아 걸어가는데 Y의 손이 비어있었지만 잡을 수가 없었다.
대화같지도 않은 피상적인 문장만 늘어놓으며 눈치보면서 걷다가
사람이 많이 없는 나무 데크에서 멈춰, 난간을 붙잡고 한강을 바라보며 서로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Y에게 이야기를 끌어낸 것이라고 보는게 더 정확할 것 같다.
5일이나 지났는데도 뭔가 풀리지 않았다면 아주 큰 응어리가 있는 것 같다.
혼자서 풀기 어려운 수준인 것 같은데 더 말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그냥 얘기하는게 낫지 않겠냐고.
나에게 그렇게나 많이 화났으면 말하지 않든, 말해든 어느 쪽이든 관계 파탄이 아니겠냐고 했다.
그럴바에야 말이나 해보는 게 낫지
Y가 어렵게 입을 뗐다.
속된 말로 정 털린 것 같아
[부록]
아래 이미지는, 이 일기를 쓰다가 챗GPT에게 물어본 내용의 결과다.
[결혼식장 예약한 날 대판 싸우기(1)]의 내용을 보여주고 이를 Y의 입장에서 재구성해달라고 요청했다.
Y는 챗GPT에 나온대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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