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끈을 줄여서 가방끈을 늘린다는 게 뭔지 알 것 같다.
대학원 일기 카테고리를 [생명끈과 가방끈]으로 해야겠다.
#1(2017.09.22, 3주차)
모든 게 당황스럽다.
1. 수업이 적다고 학교에 가는 날이 적은 것은 아님
수업 수가 적어서 시간 많을 줄 알았는데, 대학원 9학점은 학부 27학점이다. 수업시간은 3시간이라고 적혀있지만 실제로는 최소 3시간반-최대 5시간이다.대학원의 9학점 = 학부 27학점
2. 한글보다 영어를 더 많이 읽지만 영어 실력이 느는지 알수없음.
왜냐하면 1800년대 쓰여진 영어 서적 보고있으니까!!!!! 1800년대에 조선말로 쓰여진 문서도 못 알아보겠따!!!!!!!!!
하 근데 또 하니까 되더라.. 미친듯이 붙잡고 사전 찾아가면서 읽고 모르면 질문하고 공부하니까 또 되더라
그리고 어떤 수업 왜 책 벌써 3권째냐? 나는 아직 이해도 다 못했는데, 때려붓고 넘어간다. 자갈만 가득한 화분에 물을 잔뜩 붓는 상황이다. 자갈 틈을 통과한 물이 밑으로 흘러나와 넘친다. 자갈이 금새 메마른다.
능력을 키워나가는 방식이 평온하게 계단을 차곡차곡 오르는 게 아니다. 내 키에 닿지 않은 벽까지 머리를 어떻게든 들이밀어서 간신히 닿으면, 다시 벽을 높아진다. 아둥바둥대면서 다시 점프를 하든, 뭘 어떻게해서라도 머리를 들이민다
3. 난생 처음 약간의 폭식증이 생김
몇개월 전까지만해도, 가리는 것 없이 음식을 맛있게 잘먹었다. 지금은 항상 식욕이 별로 없는데, 입에 음식을 쑤셔넣는다. 먹고싶은만큼 다 못먹는 이유는 (1) 식비때문에, (2) 먹고 싶은 게 딱히 생각이 안나서. 근데도 어제는 배가 고파서 저녁 한끼에 국수 한 그릇 비우고, 삼각김밥 먹고, 초코우유 먹고, 햄버거를 먹을까 말까하다 식비 생각해서 참았다. 한날은, 밤에 배가 너무 고파서 귀찮음을 이기고 햄버거를 사먹었다. 나의 게으름이 식욕에게 지다니.
그러다보니 자주 체한다. 근데 체한 걸, 또 먹어서 밑으로 내려보낸다. 음식을 위장에 집어넣어서 계속 쌓는 느낌이다.
당연히 원하지 않는 곳에 살이 붙고, 건강이 안 좋아짐. 감기가 올 것같을 때 비타민 하나 먹고 자면 다음날 나았는데 이젠 안 그렇다. 나이들어서? 라기엔 난 스물세살이야 ㅠㅠ
정신건강은 나빠질 틈도 없는 줄 알았다. 근데 문득 보니, 그 사이에 성격 더러워져있었다.
4. 같이 대학원 간 친구와 맨날 하는 인사 “오늘도 살아남자”
5. 만사 귀찮음
화장 안하고 가는 날, 자신감은 없어도 진짜 편하다. 더 잘 수 있고, 나중에 화장 무너져서 찝찝할 일도 없고. 눈썹이랑 아이라인 문신하면 진짜 편하지 않을까. 머리 길어서 말릴 때 짜증나. 안 감으면 찝찝해. 머리카락 좀만 잘라야겠다. 그 뭔가 형언할 수 없는 이 '억척스러움'?이 편해질 것 같아.
6. 7일 동안 쉬지않고 과제4개 + 논문1개 고쳐썼다. 근데 제일 먼저 시작한 과제 1개하는데 4일 꼬박 걸렸다. 이런적 처음이다. 과제 3개와 이틀을 남겨놓고 울었다. 다행히 다 해내긴 함. 다행이야=다해냈어. 교수님한테 안 혼났으면 좋겠다. 이딴 걸 글이라고 써왔냐, 학부 때 글쓰기 연습 안했냐, 공부를 왜이렇게 안해 이런 말 안 듣게 해주세요.
이례적인 상황들의 연속이다.